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카사블랑카 회담 (문단 편집) === [[자유 프랑스]] 내 지도자 문제 === 자유 프랑스의 양대 지도자였던 샤를 드골과 앙리 지로 사이 가운데 누가 주도권을 쥐느냐는 문제 역시 연합군 입장에서는 뜨거운 감자였다.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서 두 사람을 모두 회담장으로 초빙하였지만 갈등은 여전하였고, 두 사람은 처칠과 루스벨트 앞에서도 으르렁(...)거렸다.[* 이런 분열상이 드러나는게 우려됐던 루스벨트는 강제로 두 사람에게 화해의 악수(...)를 시켰고 기자들로 하여금 사진을 찍게 했지만 [[https://en.m.wikipedia.org/wiki/Casablanca_Conference#/media/File:Degaulle-freefrench.png|딱 봐도 어색한 게 드러난다]].] 사실 루스벨트는 외골수적인 성향이 강했던 드골 대신 프랑스령 북아프리카와 서아프리카의 민간, 군사분야 총사령관인 지로를 선호하여, 그를 자유 프랑스의 지도자로 옹립시키려 시도했으나 처칠의 반대[* 처칠 역시도 드골을 엄청 싫어했고, 전쟁 기간 내내 드골과 사사건건 갈등을 빚었다. 하지만 어쨌든 처칠은 2차대전을 수행하기 위한 프랑스의 지도자로는 드골이 적합하다고 보았기 때문에 드골에게 힘을 보태주었다.]에 부딪혔고, 게다가 지로의 정치적 수완이 그렇게 훌륭하지는 못해서 결국 종전 무렵이 되면 자연스럽게 드골에게 힘이 집중된다. 덧붙여서 본토를 [[프랑스 침공|독일에게 점령]]당한 프랑스는 회담 기간 내내 들러리 신세였고, 중요한 군사 문제를 다루는 회담에서는 철저히 배제당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